《비, 내리다》는 비를 소재로 한 일본 작가의 산문집을 엮은 책입니다.
비가 내리면 온 사위는 물론, 마음도 차분해집니다.
시간도 여느 때보다 느릿느릿 더디게 흘러갑니다.
책을 펼치면 고요히 이 순간을 느끼는 빗속 여행이 시작됩니다.
<비의 회상>은 비 내리는 풍경 속에서 떠오른 저자의 어린 날의 기억을 이야기합니다.
<신록의 비>는 온 사위가 초록빛으로 물든 신록의 계절에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를 예찬하는 산문입니다.
<비 오는 날 향을 피우다>는 비 오는 날 백단향 속에서 피어오른 저자의 아름다운 상념이 깃든 이야기입니다.
<꽃보다 비>는 장맛비를 애정하는 마음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풀어낸 산문입니다.
<빗방울>은 세상만사와 인생을 빗방울에 비유한 저자의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습니다.
[책 속으로]
- 어젯밤부터 내리던 비는, 마침내 그 기세를 더하는가 싶더니 낮부터 억수같이 쏟아져 내렸다. 연둣빛 나뭇잎은 빗방울에 휘청거리고, 집안에 자리한 물건에는 검푸른 그림자가 가라앉아 있다.
- 나무는 검은 음영을 드리운 채 흔들리고, 이따금 조각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쳤다. 엷은 초록 잎의 그림자가 눈부시게 빛나고 흙과 풀에서는 무더운 여름이 피어올랐다.
- 나는 깊은 밤 욕조에 느긋하게 누워 빗소리 듣는 걸 좋아한다. 비가 내리는 요즘은 그런 내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때이다.
- 향의 연기가 스러질 무렵이면, 나는 가벼운 피로를 느끼는 까닭에 일어나 문을 밀어젖힌다. 마음속에 내리던 비는, 밖에서도 어김없이 내리고 있다.
- 밝은 햇살 속으로 불타 사라져가는 색채의 변화는, 그저 쓸쓸히 바라보는 내 가슴에, 슬픈 사랑 이야기가 담긴 지극히 아름다운 문장들을 읽어나가는 듯한 부드러운 비애를 남긴다.
-차분히 빗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이러저러한 기억이 마음에 되살아나 하나의 그리운 풍정을 이룬다.
[작가 소개]
와카스기 도리코(若杉鳥子, 1892~1937)
1892년 도쿄 시타야에서 태어났다. 1세에 이바라키현 고가시에 있는 게이샤 오키야의 양녀로 들어갔다가, 다시 다른 곳의 양자로 보내진다. 《女子文壇》에 투고를 시작하고, 요코세 야우를 스승으로 섬긴다. 16세에 중앙신문 기자가 되고, 센코 미즈노, 구니코 이마이, 이쿠타 하나요와 돈독한 우정을 쌓는다. 《創作》,《珊瑚礁》 등의 작품을 통해 1925년 《文芸戦線》에서 작가로서 평가받으며, 《戦旗》, 《若草》, 《婦人公論》등에 작품을 발표했다. 프롤레타리아 작가 동맹에 가입하고, 미야모토 유리코, 사타 이네코와 《働く婦人》의 편집 활동에 참가했다. 1933년에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구류되고, 1937년 45세에 병환으로 생을 마감했다.
스스키다 규킨(薄田泣菫, 1877~1945)
본명은 스스키다 준스케.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에 활동했던 낭만파 시인이자, 수필가. 주로 고어나 한어를 많이 사용한 고전적 정취가 넘치는 시를 발표하며 낭만파 시인으로 성장하여 메이지 후기 일본 시단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또한 오사카 마이니치신문에 칼럼 <茶話>를 연재하여 최고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나가이 가후(永井荷風, 1879~1959)
도쿄에서 태어났다. 도쿄 외국어학교 중국어과를 중퇴하고 소설가를 지망하였다. E.졸라에 심취하여 자연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지옥의 꽃》(l902), 《꿈의 여자》(1903) 등을 써서 일본 자연주의 문학의 기수가 되었다. 1903년에 미국, 1907년에 프랑스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탐미·향락의 작풍을 내세우며 동시대 문명에 대한 혐오감을 토로하면서 예리한 비판을 가하였다.
이시와라 아츠시(石原純, 1881~1947)
도쿄에서 태어났다. 도쿄제국대학 이과대학 졸업을 졸업하고, 동북제국대학 조교수 시절 유럽으로 건너가 아인슈타인 밑에서 연구한다. 1922년에는 아인슈타인의 일본 방문 강연의 통역을 맡았으며, 일본에 상대성이론을 소개하는 등 물리학 계몽에 큰 역할을 했다. 1931년부터 잡지 《과학》의 초대 편집 주임을 맡았으며, 그 후 가인으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1945년 12월에 교통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고, 약 1년 후에 사망했다.
[편역자 소개]
연하늘
동물을 사랑하고, 작은 생활을 지향하며, 자연을 찬미한다.